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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오청: 밀려난 사람들이 세운 항구 · 8

1921년, 이 거리에서 계몽이 시작됐다

8화 · 장웨이수이와 「망춘풍」

핏트립 에디터 · 2026.07.20

다다오청은 상업 지구인 동시에 근대 대만의 사상과 대중문화가 태어난 곳이다. 이란 출신 의사 장웨이수이(蔣渭水, 1888~1931)는 1916년 다다오청으로 와 다안의원(大安醫院)을 열었고, 1921년 창립된 대만문화협회의 핵심 인물이 됐다. 문화협회는 강연과 출판으로 식민지 대만의 계몽운동을 이끌었는데, 그 거점 중 하나가 이 거리였다. 대중음악의 층도 겹친다 — 1933년 발표돼 지금도 널리 불리는 「망춘풍(望春風)」의 노랫말을 쓴 이임추(李臨秋)가 이 동네 사람이다. 3화에서 본 차 무역의 부가 건축만이 아니라 병원과 강연장과 노래에도 흘러 들어간 셈이다.

여기까지 이 거리는 돈의 이야기였다. 차와 약재와 포목. 그런데 다다오청에는 층이 하나 더 있다 — 이 거리는 근대 대만의 사상과 노래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의사가 연 진료소

이란 출신 의사 장웨이수이(蔣渭水, 1888~1931)는 1916년 다다오청으로 와 다안의원(大安醫院)을 열었다 사실. 그리고 1921년 창립된 대만문화협회의 핵심 인물이 된다 사실. 문화협회는 강연과 출판을 통해 식민지 시기 대만의 계몽운동을 이끌었고, 다다오청은 그 활동의 주요 무대 중 하나였다 추정.

왜 하필 상업 거리였나

사상 운동이 부두 상권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3화에서 본 차 무역의 부가 이 거리에 집중되면서, 인쇄와 강연과 모임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과 인구가 함께 모였다 추정. 항구는 물건만이 아니라 신문과 사상도 들여온다 추정. 다다오청은 그 두 흐름이 겹친 지점이었다.

그리고 노래

대중문화의 층도 함께 놓인다. 1933년에 발표돼 지금도 널리 불리는 대만어 가요 「망춘풍(望春風)」의 노랫말을 쓴 이임추(李臨秋)가 이 동네 사람이다 사실. 봄바람을 기다린다는 그 노래는 대만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남았고, 이 거리를 걸을 때 배경음으로 삼기에 이보다 맞는 곡을 찾기 어렵다.

거리를 다시 보기

이 층을 알고 나면 디화제의 인상이 바뀐다. 여기는 물건이 지나간 거리이면서, 동시에 병원과 강연장과 노랫말이 있던 거리다 추정. 4화에서 올려다본 파사드 뒤에서 그 일들이 벌어졌다.

자주 묻는 질문

장웨이수이는 누구인가요?
1888년 이란 출신의 의사이자 사회운동가로, 1916년 다다오청에 와서 다안의원을 열었습니다. 1921년 창립된 대만문화협회의 핵심 인물이며, 193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만문화협회는 무엇을 했나요?
1921년 창립돼 강연과 출판을 통해 식민지 시기 대만의 문화 계몽운동을 이끈 단체입니다. 다다오청은 그 활동의 주요 무대 중 하나였습니다.
「망춘풍」이 왜 여기와 관련 있나요?
1933년 발표된 이 대만어 가요의 노랫말을 쓴 이임추가 다다오청 사람입니다. 지금도 널리 불리는 곡이라, 이 거리를 걸을 때 배경음으로 삼기 좋습니다.

체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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