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이 거리는 돈의 이야기였다. 차와 약재와 포목. 그런데 다다오청에는 층이 하나 더 있다 — 이 거리는 근대 대만의 사상과 노래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의사가 연 진료소
이란 출신 의사 장웨이수이(蔣渭水, 1888~1931)는 1916년 다다오청으로 와 다안의원(大安醫院)을 열었다 사실. 그리고 1921년 창립된 대만문화협회의 핵심 인물이 된다 사실. 문화협회는 강연과 출판을 통해 식민지 시기 대만의 계몽운동을 이끌었고, 다다오청은 그 활동의 주요 무대 중 하나였다 추정.
왜 하필 상업 거리였나
사상 운동이 부두 상권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3화에서 본 차 무역의 부가 이 거리에 집중되면서, 인쇄와 강연과 모임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과 인구가 함께 모였다 추정. 항구는 물건만이 아니라 신문과 사상도 들여온다 추정. 다다오청은 그 두 흐름이 겹친 지점이었다.
그리고 노래
대중문화의 층도 함께 놓인다. 1933년에 발표돼 지금도 널리 불리는 대만어 가요 「망춘풍(望春風)」의 노랫말을 쓴 이임추(李臨秋)가 이 동네 사람이다 사실. 봄바람을 기다린다는 그 노래는 대만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남았고, 이 거리를 걸을 때 배경음으로 삼기에 이보다 맞는 곡을 찾기 어렵다.
거리를 다시 보기
이 층을 알고 나면 디화제의 인상이 바뀐다. 여기는 물건이 지나간 거리이면서, 동시에 병원과 강연장과 노랫말이 있던 거리다 추정. 4화에서 올려다본 파사드 뒤에서 그 일들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