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오청이 왜 그렇게 화려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는가. 답은 한 잎에 있다. 이 거리의 부는 차에서 왔다.
1867년에서 1869년까지
영국 상인 존 도드(John Dodd, 한자 표기 陶德)는 1867년 우롱차를 마카오에 시험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사실. 이듬해인 1868년에는 샤먼과 푸저우에서 장인을 데려와 우롱차를 정제하고 미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Formosa Oolo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실. 그리고 1869년, 두 척의 배로 2,131담의 차를 뉴욕으로 직접 실어 보냈다 사실. 이 직송이 호평을 받으면서 대만 차 산업의 붐이 시작됐고, 도드는 대만 우롱차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사실.
왜 하필 여기였나
차나무는 다다오청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도 차 산업의 중심이 이 거리가 된 이유는 위치다. 1860년 단수이 개항 이후 이 강변 부두가 타이베이의 관문이 되면서, 북부 산지에서 내려온 찻잎이 여기 모여 정제되고 포장돼 배에 실렸다 사실. 즉 다다오청은 생산지가 아니라 가공과 수출의 결절점이었다 추정.
거리에 남은 냄새
이 산업의 층은 지금도 후각으로 확인된다. 디화제 일대에는 직접 배전을 이어가는 오래된 차 상점이 남아 있어, 시간이 맞으면 볶는 냄새가 거리로 흘러나온다 사실. 한약재와 건어물 냄새 사이에 섞이는 그 볶은 차 냄새가, 19세기의 수출항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추정.
부가 남긴 것
중요한 것은 이 부가 어디로 갔는가다. 차 무역이 만든 자본은 곧 건물이 됐다 — 다음 화에서 볼, 한 거리에 네 시대가 겹친 상가 건축이 그 결과물이다 추정. 그리고 8화에서 보듯, 그 부는 건물만이 아니라 사상과 운동에도 자금을 댔다.